*

 

 

 

후시미 사루히코의 안색이 새파래진 것은 스트레인에게 공격을 받고 나서였다. 그것을 도묘지 앤디는 바로 옆에서 보았다.

 

 

스트레인에게 공격받는다는 상황 자체는 흔한 일이었다. 매사에 무관심하고 성질도 더러웠지만 후시미 사루히코는 상사의 직책에 소홀하지는 않았고 일이 잘 안 될 때는 안색이 새파래질 때도 있었다.(주로 아와시마 부장이 선심으로 먹을 것을 건낼 때였다) 아무튼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스트레인의 공격을 받자마자 왼쪽 소매에서 얇은 단검을 꺼내 든 후시미는 그것을 오른손으로 동시에 세 개 씩이나 날려댔고, 하나는 스트레인의 어께에, 하나는 허벅지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 뒤에서 아키야마 히모리와 벤자이 유지로가 상대하던 또 다른 스트레인의 발치에 꽂혀 도망치려던 스트레인을 생텀의 벽으로 막았다. 도묘지는 그 대단한 묘기에 박수를 칠까 했지만 왼팔을 감싸쥐고 휘청거리는 그를 보고 후시미 씨! 하며 네 걸음만에 그의 어께를 잡을 수 있었다.


예상외로 후시미는 그를 뿌리치지 않았다. 그보다는 뿌리칠 팔이 없었던 거겠지만 도묘지는 그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고 푸른 안색도 볼 수 있었다. 많이 아픈가보다. 정신없는 와중에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고 환부를 보려던 도묘지는 팔을 움켜 쥔 후시미의 손을 한 번 보고, 후시미의 얼굴을 보고, 마지막으로 아키야마에게 구속당하고 있는 스트레인을 보고, 소리쳤다.

 

"야 너 뭐야!"
"시끄럽다 도묘지."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후시미 씨! 지금..."
"시끄럽다고 했다! 단순히 스트레인의 능력일 뿐이잖아, 이미 잡은 놈한테 소리지르지 마. 시말서 쓰고 싶냐?"

 

시말서라니, 부당하다. 다른 생각보다 그게 먼저 떠오르는 건 문서작성에 취약한 도묘지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도묘지의 눈에 떠오르는 그것을 읽은 후시미는 쯧, 하고 꽤 누그러진 억양으로 혀를 차고 베인 팔이 아픈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팔을 움켜쥐었다. 그 위로 흐르는 진득한 액체를 도묘지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파란색이었다.

 

구속한 스트레인은 접촉한 액체의 색을 바꾸는 능력으로 오수를 무단 방류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왕 그런 능력이라면 음료 회사에 취직하는 게 낫지 않나 하고 출동 전에 아키야마와 벤자이에게 그런 우스갯소리를 했던 것을 도묘지는 떠올렸다.
날붙이를 들고 있던 스트레인은 고의였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후시미의 피 색깔을 바꿔버린 듯 했다. 원래도 안색이 창백한 편이었지만 피부가 아예 옅은 파란색으로 변해버린 후시미는 창백한 차원을 넘어 시체 같았다. 손 위로 흘러내리는 액체는 파란색이었지만 그가 입고 있는 제복 또한 파란색이라 그리 티가 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이상했다. 미간에 새파랗게 잡힌 주름에 눈이 가서야 도묘지는 아차 하고 구속차량 가까이에 있던 벤자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벤자이! 구급상자좀! 후시미 씨 부상! 부상!"
"됐어, 할 일들 해."
"스트레인 부상! 후시미 씨 완전 이상해!"
"시끄럽다 도묘지."
"피 엄청나!"
"시끄럽다 도묘지!"
"아 후시미 씨 너무하다! 그렇게 연달아 시끄럽다고 하면 상처받거든요? 사람이 걱정하는데 와 나 진짜..."
"알 게 뭐냐. 너 보고서 별도로 제출해. 끝까지 검토한다."
"악 안돼!"

 

부상한 후시미보다 더 아픈 표정을 짓고 있는 도묘지의 정수리에 가볍게 주먹을 꽂은 것은 벤자이였다.
"너 카모 씨 없다고 입에 리미터 풀고 그러는 거 아니다."
도묘지는 뒤로 홱 돌아 뭔가 따지려고 했지만, 그 때 후시미를 보고 멍한 표정을 짓는 벤자이의 얼굴을 보고 왠지 유쾌해진 기분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신 후시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봐, 후시미 씨 완전 파랗지."
"후시미 씨, 일단 제복을."
"......"


벤자이는 순순히 팔을 내민 후시미의 왼쪽 소매를 잡아당겨서 벗겨냈고 도묘지는 미묘한 표정을 짓는 벤자이를 보다가 그를 따라서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파란 제복으로 가려져 있을 때는 몰랐지만 회색 베스트와 흰색 와이셔츠가 온통 파랗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셔츠 자르겠습니다."
후시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도묘지는 잽싸게 붕대를 찾아 끝을 풀어 막 가위질을 끝낸 벤자이에게 건내고는 소독약의 뚜껑을 열었다.  몇 분간의 응급처치가 이루어질 동안 아키야마가 구속차량이 돌아갈 준비가 끝났다고 보고하러 왔다가 후시미를 보고 또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후시미는 여전히 기분 나빠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벤자이는 자기가 순찰차 운전을 할 테니 아키야마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보통이라면 페어인 아키야마와 벤자이가 남겠지만 도묘지가 인계하기 귀찮다고 투정을 부려서였다.

 


*

 

 


파랑과 하양의 배색에 셉터4의 마크가 큼직하게 박혀 있는 승용차의 뒷좌석에는 후시미 사루히코가 앉아 눈을 부릅뜨고, 뒤를 돌아보기도 무서울 정도의 오라를 뿜고 있었다. 도묘지는 그것이 실혈에 의한 피로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 앞에서 자기 싫은 거잖아. 도묘지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설래설래 내저었다. 피곤한 타입이야.
거기다 성질도 더러웠다. 엮이는 순간 귀찮아지기 십상이었다. 솔직히 일 잘 하는 건 인정하고 위의 상사들을 대하는 거침없는 자세를 보자면 대단한 점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에는 정말, 꽝이었다. 일 외에는 가까이 하지 말아야지. 도묘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후시미 자체가 사람을 멀리하는 성향이라 지금까지도 그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치 적이라도 앞에 둔 양 사나웠던 기세가 보이지 않고도 알 만큼 꺾인 것은 동백 문이 보일 때였다. 그 변화가 너무 확연해서 도묘지는 백미러로 후시미 쪽을 힐끔거리려다 벤자이와 머리를 부딪혔다. 급하게 밟은 브레이크가 비명소리를 냈고 곧 운전 제대로 못하냐는 후시미의 신경질적인 질책이 들렸다. 벤자이의 굳은 목소리가 딱딱하게 시정하겠습니다를 외친 뒤에야 순찰차는 다시 움직였다.

 

"벤자이. 머리 괜찮아?"
"아, 뭐. 문제없다. 아프기야 하지만."
"난 하나도 안아프던데."
"굳이 네 머리가 돌머리임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도묘지."
"뭣, 이 천재님을 뭘로 보고!"
"하아..."

 

왜 운전하던 사람이 백미러 쪽으로 머리를 틀었냐는 질문을 도묘지는 굳이 하지 않았다. 벤자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기는 다르겠지만(도묘지는 단순한 호기심이었고 벤자이는 글쎄, 상사의 눈치를 보던 것 아니었을까)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같을 것이고 아마 벤자이도 이견은 없을 것이다. 동조가 말 없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피부는 시퍼렇게 변했지만 표정만은 거의 평소에 가깝게 돌아온 후시미를 확인한 뒤 거울 속에서 둘은 다시 눈빛을 교환했고 도묘지는 아쉽다는 듯 어께를 으쓱하고 벤자이는 느릿하게 청왕의 부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뒷좌석에서 후시미의 지시가 들려왔다.

 

"벤자이."
"네."
"구두 보고는 네가 해라. 실장한테 보고하는 상황이 되면 아키야마한테 사건경위가 있으니까 참고해. 부장한테 내 상태 보고하고. 조퇴계 쓰고 있을 테니까 의무실로 받으러 와."
"네."
"도묘지, 너 일 안시킨 거 아니다. 지금 시간 줄 테니까 보고서 작성해."
"엑, 후시미씨!"
"시끄러워. 머리울려."
"제가 조퇴계 받아서 가져가면 안돼요? 후시미 씨는 의무실에서 좀 쉬시고. 그 상태로 특무대실 들어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

 

특무대가 언제부터 스트레인 부상에 신경썼냐, 그 이전에 네가 언제부터 나한테 그렇게 신경썼냐, 하는 눈빛이 뒤에서 쏟아졌지만 더 이상 도묘지를 상대하는 데에 지쳤는지 후시미는 벤자이가 주차할 때 까지 아무 말도 없다가 혀를 한 번 차고 마음대로 해, 하며 뱉듯이 말했다. 도묘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그런 도묘지를 한심한 듯 쳐다보던 벤자이는 이내 차 키를 회수하고 의례적인 수고를 말하며 차 밖으로 나왔다.

 


*

 

 


"저, 보고서 작성하러 가면 안 될까요..."
그 소리를 들은 후시미가 하아.하고 얕게 숨을 내쉬었지만 도묘지에게 그것이 어이없음인지 비아냥인지 분간할 여유는 없었다.
"저런, 급한 보고서인가요, 도묘지 군."
"후시미 씨가 별도로 제출하라고 하셨달까... 문서작성에 피드백을 주시려 했달까..."
"저런, 업무교육 중이었군요. 그렇지만 그 피드백을 줄 후시미 군이 내일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그리 급하진 않겠지요? 후시미 군."
제발 급하다고 해주세요. 도묘지는 필사적으로 후시미에게 눈짓을 보냈지만, 후시미는 그걸 본 척도 하지 않고 무감동하게 대답했다. 새파란 피부가 차가워 보이는 데에 한 몫 했음은 물론이다.
"뭐, 그렇습니다."


망했다. 도묘지는 거부감 가득한 표정을 관리하려 애썼지만 분명 표정이 얼굴 밖으로 나왔을 것이라는 데에 자신의 게임들과 그 세이브 데이터를 전부 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을 정면으로 보고도 상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잘 됐네요, 도묘지 군. 모쪼록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지금은 나를 좀 도와주세요. 우선 거기 알코올을..."
"네,넵"
"후시미 군의 팔에 난 상처는 의료반에서 봐 주셨으니 저희는 자잘한 것들을 다뤄보죠."
도묘지는 어색하게 웃으며 네,네,하고 대답하며 무나카타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그걸 보던 후시미는 여전히 파란 안색으로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실장, 취미가 나쁩니다."
물론 청자가 빙긋 웃고는 답하지 않았으니 묻혀버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