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X : ANGEL : 13264 words
가브리엘 소멸 후 오른손으로 지우기에 너무 많은 양의 텔레즈마에 둘러싸인 무언가가 되어버린 카미조 날조.
레이비니아가 과하게 벤츠.
인간관계가 카미조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구약 22권 내용 포함.
완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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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비니아 버드웨이는 최대한 혼란스러워하지 않으려 했다. 해서 어쩌랴, 세계는 방금 전 제 3차 세계대전의 진행과 동시에 지표면 전체가 멸망을 맞을 예정이었고, 기적적으로 그 위기에서 벗어난 직후였다. 그녀의 통찰력은 이후에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멸망 자체보다는 나을 것이며, 결사 새벽녘색의 햇살은 모든 상황을 제일 먼저 예측하고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뒤였다. 지금 겪는 혼란은 이후 누구나 겪을 혼란이다. 레이비니아는 영하의 기온과 북극해의 바람에 몸과 머리가 동시에 식는 감각을 느끼며 보트 앞머리에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검푸른 바다 위에 사람이 서 있었다. 정확히는, 카미조 토우마가 서 있었다.
"Regnum 771."
"마법명?! 잠깐, 잠깐 기다려! 갑자기 공격을...!"
"늦었어."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 14:25-27)
"어떠냐, 카미조 토우마. 반쯤 천사가 된 기분은?"
물 위에 떠 있는 카미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마법명까지 대 가며 일격을 날리고, 그것이 장렬히 튕겨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레이비니아가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한 말이었다. 카미조는 대답 대신 비명을 질렀다. 마법으로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지 말라는 요지의 비명이었지만 그도 과연 물 위에 떠 있는 자신이 익숙치 않은 지 금새 목소리는 작아졌다.
"무슨 뜻이야."
"보통 사람이, 하물며 아무 이능도 통하지 않는 네가 물 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천사가 아니라면 성인에 가까우려나?"
"그런 것 치고는 거창하네, 물 위를 걷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을 수도 있잖아. 소금쟁이 로봇의 진화판이 드디어 여기에...!"
"헛소리."
레이비니아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학원도시의 주민으로서 반박할 생각이 만만하던 카미조는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장치가 있든 없든, 네게 그런 운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거냐?"
"우..."
자유낙하하던 도중에 운 좋게 안전장치에 떨어졌습니다! 확실히 카미조 토우마에게 일어날 것 같은 일은 아니었다.
"고위급 천사의 텔레즈마야. 소멸하고 남은 잔재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천사의 현계를 단숨에 해치운 네 오른손이라도, 허공에 만연한 것 까지 지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군."
"잘 모르겠지만, 어디 땅 위로 옮길 수는 없는거야?"
"글쎄, 마음같아서는 너를 데려다 조사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너에게 더 이상 손을 대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얼굴 보자마자 한대 날려놓고 그런 소리를 해도 말이지."
"내 마술이 그런 것도 고려하지 못할 만큼 의심스럽다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결사에 들어와라. 내 완벽함을 몸소 체험시켜주지."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을게."
카미조는 허공에 오른손을 휘휘 저었다. 가브리엘에게 쓸 때만 해도 손에 닿는 무언가가 사라지는 감각과 환하게 빛나던 시야가 지금은 반짝이는지 아닌지 미묘했다. 사라지는 감각은 있지만... 카미조는 손을 휘두르면서 애매한 표정이었다. 다친 팔을 자꾸 움직이는 카미조를 레이비니아가 무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저지했다.
"일부러 손을 휘두를 필요는 없어. 정신 사나우니까 그만 해."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내 마술적 지식에 의거한 개인적인 해석이다만, 네가 물 위에 떠있을 수 있는 건 그것이 가브리엘의 텔레즈마이기 때문이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원래 가브리엘의 목적은 에너지를 얻기 위한 물과의 접촉이었고 이제 네 주위의 텔레즈마는 의식없이 물에 닿는다는 목적만 있는 그저 힘 덩어리라 너에게 그걸 방해 받는 것 뿐ㅡ이라고 추측하고 있어. 거기에 네 오른손이 지금도 계속 텔레즈마를 없에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ㅡ"
레이비니아는 주먹을 쥔 손에서 엄지를 치켜올리더니 그대로 손목을 회전해 아래로 내리꽂았다.
"풍덩."
"그 포즈 진짜 너무하네!"
"이쪽은 네가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건지러 왔던 거야. 이런 일이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그래서, 카미조 토우마. 거기서 학원도시까지 내 도움 없이 갈 생각인건가?"
"...진짜 너무하시네요..."
"칭찬으로 듣지."
그 말을 끝으로 레이비니아는 카미조에게도 낯익은 금발의 부하가 깔아놓은 깔개 위에 앉아 김이 올라오는 텀블러를 받았다. 카미조는 한숨과 함께 어께를 축 늘어뜨렸다. 레이비니아는 그 쳐진 어께를 가늠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채로 시간이 흘렀으니 슬슬 피곤과 통증이 몰려 올 때였다. 하지만 레이비니아로서도 이 상황을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인선이 잘못되면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레이비니아는 그가 마지막에는 결국 기절하듯 수면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가브리엘이 소멸하기 직전에도 했던 상상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바싹 말라 거꾸로 떨어지던 카미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레이비니아, 다른 사람들은 무사해?"
"......."
레이비니아는 올라오는 짜증을 느꼈다. 카미조는 옴짝달싹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입 밖으로 꺼냈으니 다음은 행동에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서든 전쟁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무사를 확인하려 하겠지. 그러기 전에 그녀는 카미조를 먼저 낚아 채 그 어떤 진영보다 빨리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사나흘이면 표면적으로나마 정리될 전쟁의 뒷처리까지 카미조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이야.
"...굳이 내게 물어보지 않아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야."
"뭐?"
"정말 전쟁이 끝난건지 확인하러 몰려들고 있으니까. 학원도시나 교도들 뿐만이 아냐, 조금이라도 관련있는 것들이 죄다 몰려들겠지, 오히려 규모가 큰 단체들보다..."
레이비니아의 말이 끊긴 것은 순간 수면 위로 울려퍼진 벨소리 때문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벨소리. 카미조가 당황하여 온몸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꺼내든 손바닥만한 통신기기는 스트랩이 어딘가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스크래치가 나 있었지만 그 참상 속에서도 무사했는지 화면에 물이 들어간 흔적도 금도 가 있지 않았다. 화면에 떠 있는 번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카미조를 보며 레이비니아가 마저 말을 이었다.
"네게 흥미가 많은 개인 쪽이 더 빠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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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올수록 더 커지는 소리 탓에 헤리어가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레이비니아는 근방에 자기 배가 있다면서 전투기를 그쪽으로 유도했다. 그녀가 타고 온 보트도 그 배에서 내려 온 듯 했다. 전투기라니, 열렬하네. 레이비니아는 빈정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이 바보야!!!"
확실히 미사카 미코토의 고함소리는 열렬했다. 카미조는 제 어께가 움츠러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비행체에 타는 것도 모자라 사람이 위험하길래 구하러 갔더니 그걸 무시해? 너 네가 무슨 일에 휘말렸는지 알고는 있는거야? 대체 3차 대전이 뭐야, TV에 나온 건 알고 있어? 학원도시가 널 공격하려 한 건 알고 있냐고?"
노도처럼 쏘아붙이는 고함의 홍수에 카미조의 어께가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미코토가 화가 났을 때는 정면으로 맞서서 좋을 일이 없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회피라고. 왠지 영영 떠오르지 않을 기억 저편에서부터 시작해서 몇 달 간의 기억들이 총집합 해 레드라이트를 깜빡거리며 필사적으로 도망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카미조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도움을 요청하려고 주위를 둘러봐도 지척은 바다. 눈 앞에 있는 것은 흥미진진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마녀 레이비니아와, 미코토의 뒤에서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열심히 보트의 노를 젓고 있는 미사카 동생ㅡ몇 호 인지는 알 수 없었다ㅡ뿐이었다. 카미조에게는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저기... 미코토 씨... 제발 진정..."
"진정?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너, 대체!"
물론 역효과였다.
"꼴이 이게 뭐야!!! 왜 바다에 떠 있는 건데!!!"
"저런, 그 이상 다가가면 위험할텐데."
미사카 여동생이 젓던 노를 멈췄다. 미코토는, 거의 눈에 핏발이 선 채로 레이비니아를 돌아보았다. 어린 마녀는 그 시선을 여유롭게 받아넘겼다.
"지금 카미조 토우마 주위에는 상당한 위력의 에너지가 그 녀석의 오른손과 충돌중이야. 그 외에 다른 사람이 들어갔을 때 어떻게 될 지 이쪽에선 장담할 수 없어. 그 이상 나가지 않는 걸 추전하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 아냐?"
허어, 레이비니아는 감탄의 소리를 냈다. 미코토에게는 그 소리가 자신을 평가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지금 그녀는 거슬리는 태도에 일일히 길게 걸고 넘어질 때가 아니었다.
"너,"
"레이비니아 버드웨이. 마구잡이로 부르는 건 사양해 줬으면 좋겠군."
"미사카 미코토야. 버드웨이. 넌 어떤데, 얘 꺼내고 싶어서 배까지 띄워 온 거 아냐?"
레이비니아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물 위에 떠서 버티고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말이지. 사방이 바다인 곳이고, 그대로 익사해버리면 이쪽도 곤란하거든. 하지만 내 쪽에서 즉각 쓸 수 있는 수단은 없어. 네 우수한 초능력이라 해도 통하지 않을 테고."
"뭐야, 날 알아?"
"이전부터 학원도시에는 관심이 있었어. 방문도 했고. 몇번이고 소개를 들은 입장에서는 이미 만나본 적이 있기라도 한 기분이네, 초전자포."
자신의 이명을 들은 미코토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지만 곧 그래, 하고 한마디로 수긍했다. 레이비니아는 그녀가 알아낸 정보를 확인하듯이 중얼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주위에 있는 힘, 이쪽에서는 텔레즈마라고 하지. 이게 상당히 까다로워서 말야. 같은 급의 힘이 아니라면 꼼짝하지 않아. 카미조 토우마가 거기서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야.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때문에 바다에 그대로 빠져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카미조 토우마의 오른손이 텔레즈마를 전부 지우기 전까지는 나오지 못해. 나온다 해도 글쎄... 남은 텔레즈마가 물과 접촉했을 때 파괴적인 형태가 되지 않을 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군."
"힘의 범위는?"
"이쪽에서 감지하기로는 카미조 토우마를 중심으로 반경 5m 전후, 반구형이라 하기에는 형태가 불완전하군. 중심으로 갈 수록 힘의 농도는 짙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안의 상황은 안에 있는 자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지."
"방어는 어느 정도 가능한데?"
"아까 말했듯이 애초에 통하는 수준의 힘은 아니다만, 이쪽에서 맨 처음 확인한 바로는..."
레이비니아는 처음 카미조에게 일격을 날린 후에 지었던 것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카미조에게는 더없는 불길함의 신호였다.
"머리 위에서 수류탄 하나가 터져도 무사할 거다."
"이 도S가!!!"
제게 그런 걸 날렸냐는 카미조의 억울한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우렛소리가 들렸다. 카미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처음부터 너무 세게 나가시는 거 아닌가요...? 애원 비슷한 그의 중얼거림을 미코토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눈을 가늘게 뜬 미코토의 입에서 짧은 한 마디가 새어나왔다.
"낙뢰."
(공란)
천둥은 거의 한 시간 째 이어졌다.
"...미사카."
"..."
"역시 그만해줘."
"..."
(공란)
"안되겠다고! 지금 당장! 네가 안전한지 확인하지 않으면 내가 못 견디겠어!"
미코토의 고개는 아까와는 반대로 아래로 푹 숙여져 있어,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미코토가 언젠가 그와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때를 카미조는 기억해냈다. 그녀가 수많은 여동생들을 위해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가던 어느 여름날과 같았다. 카미조는 미코토를 그녀의 절망에서 구하고 싶었다. 그녀는 여동생을 소모품의 운명에서 구해내고 싶어했다. 카미조는 그 순간에 미코토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심정이 지금은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 상황에 맞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카미조는 얼굴에 조금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공란)
미코토를 받아 든 시스터즈는 미코토를 보트 위에 가지런히 앉혔다. 옷차림을 가다듬고 레이비니아에게서 받은 모포를 덮는 손길이 조심스러워 보였다. 이내 일어선 그녀가 카미조를 향해 말했다.
"언니를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하고 미사카는 언니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학원도시로 귀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응. 내가 내려가기 전까지 계속 보트 위에 있을 수는 없어. 레이비니아, 괜찮다면..."
"아니오. 하고 미사카는 당신에게 할 말이 더 있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시스터즈-여전히 몇 호 인지는 알 수 없었다-는 레이비니아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카미조와, 고개를 끄덕일 준비가 되어 있던 레이비니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표정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눈은 깊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34분 전 미사카 네트워크에 24시간 내로 업데이트 된 데이터 전부를 상위개체가 다운로드 했습니다. 미사카 뿐 아니라 모든 개체를 관리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것 까지 수신했다고 보여집니다만... 하고 미사카는 당신에게 현상을 설명할 시간을 가늠합니다."
"상위개체라면, 라스트오더를 말하는거지. 분명 학원도시에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전쟁 한복판이었어."
"상위개채의 데이터에 접근할 권한은 미사카에게는 없습니다. 정보의 시간을 고려했을 때 당신의 정보가 보다 최신이라 판단하여 미사카는 최대한 상황을 배제한 채 말합니다."
시스터즈는 잠시 주저했지만, 이내 말을 이었다.
"상위개채 및 액샐러레이터가 현 좌표로 빠르게 접근 중입니다. 적의는 없는 것으로 판단. 미사카는 언니의 신병을 인계해 조금이라도 빨리 학원도시로 옮기고자 합니다. 하고 미사카는 당신을 또 한동안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합니다."
"액샐러레이터? 여기로 온다고?"
"학원도시제 수송헬기가 이쪽으로 오는 건 사실이야. 착륙하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부하에게 보고와 함께 서류를 건내받은 레이비니아가 확인하듯 덧붙였다. 카미조는 중얼거렸다.
"왜...?"
"죄 많은 발언이로군."
레이비니아는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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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셀러레이터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이 꼬맹이가... 네녀석의 위치를 알자마자 감사하러 가야겠다고 떼를 썼으니까."
"이 사람의 말투는 차갑지만 당신이 싫다는 건 아니야. 미사카는 미사카는 당신에게 변명해 보기도 하고."
액셀러레이터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 보다 한결 누그러진 표정이었다. 그보다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까. 그것이 새된 소리로 말하는 어린 아이 때문이라는 것을 카미조는 금방 알아챘다.
"네가 걱정되니까 그러는 게 아닐까? 하루 전만 해도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아팠잖아. 돌아가서 쉬게 하고 싶었던 거겠지."
"그런 생각도 있겠지만, 저 사람이 당신도 신경쓰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걸 안 직후에 여기로 오지는 않았을 거야.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당신에게 비밀을 말하는 소리로 속삭여보기도 하고."
"그래?"
"저 사람은 당신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받은 것 조차 대신 갚아주고 싶어하거든, 설령 당신이 바라지 않아도.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당신에게 감사인사를 한다. 고마웠어. 당신의 손 덕분에 미사카도 저 사람도 여기까지 왔어. 그리고 저 사람이 당신에게 한 짓에 대해서도 사과를.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당신에게 염치없이 응석을 부려본다."
갑자기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듯한 공격을 가했던 액셀러레이터와 괴로워 보이던 라스트오더를 떠올리며 카미조는 고개를 좌우로 두 번 저었다.
"그건 괜찮아. 이미 지난 일이니까. 맞아, 학원도시의 상황은 어때? 폭격이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니지?"
"학원도시 안에서 일반인이 말려들만큼 물리적인 충돌이 우리의 네트워크에 감지된 적은 없어. 라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당신을 안심시키는 말을 하기도 하고."
"다행이네..."
"하지만 전시라는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으니까ㅡ"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을 액셀러레이터는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라스트오더가 다가가지 못하는 그녀와 카미조 사이의 거리를. 서류 뭉치 한 묶음의 마지막 장을 넘기던 레이비니아가 말을 걸 때 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 노닥거릴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이 귀에 들어오고 나서야 액셀러레이터의 어께가 돌아섰다.
"레이비니아 버드웨이다. 마술결사 하나를 이끌고 있지."
"......액셀러레이터다."
그는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다 조금 사이를 두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로서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저렇게 되어있지."
"했던 설명을 다시 하는 것도 일이로군, 울타리를 치고 비마술계를 위한 안내문이라도 만들어야겠어. 인기 관광지가 되겠군."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은 필요 없어. 내가 묻는 건 분명 하늘 위에서 막았다고 생각했던 게 왜 아직까지 남아있느냐는 거야."
"바로 알아 볼 줄이야... 그렇군. 현계한 천사의 힘은 네가 막은 걸로 전부가 아니었다는 거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도 그것이 같은 종류의 힘이 아니면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지. 내 마술로도, 학원도시의 초능력으로도 어떻게 되는 게 아냐."
"거기에 왜 하필이면..."
저 자식이 얽힌 거지, 하는 말은 곧이어 액셀러레이터의 입에서 터져나온 기침 때문에 이어지지 못했다. 두어 번 이어지던 기침이 멎고 입에서 손을 떼자, 액셀러레이터의 손바닥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숨기듯 손을 말아쥐고 아래로 내렸다. 레이비니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휘 저었다.
"상태만 좋다면 이 상황을 바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학원도시로 돌아가는 게 최선이겠군. 서 있는 것도 고작일 텐데. 학원도시가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하,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여기로 온 건 내 판단이다. 학원도시 놈들의 지시같은 게 아니야. 저 자식과는 청산해야 할 게 있고, 볼 일은 그것 뿐이야."
"손꼽히는 화력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인원과 움직일 수 있는 성인급 인원이 제일 먼저 이쪽으로 움직인 것 자체가 손 빠른 학원도시에서 할 법한 일이라는 게 내 견해다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김에 말해두지."
레이비니아는 허공에 떠 있는 수송헬기를 흘끗 올려다보았다.
"카미조 토우마는 학원도시로 돌아 갈 거야. 만에 하나라도 이대로 밖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일은 없을 거다. 내가 신병을 맡을 테니까."
"...너, 뭐지?"
액셀러레이터가 듣기에 그것은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거기에 자신을 칭하는 말도 흘려들을 수 없었다. 성인. 액셀러레이터의 머리속에 이 전쟁이 시작되면서 마주쳤던 인간같지 않던 존재들이 스쳐갔다. 마지막으로는 알수 없는 힘으로 가득 찼던 자신과, 바로 앞의 수면을 밟고 있는 종전영웅까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액셀러레이터의 머리가 결론을 내리기 전에 레이비니아의 대답이 나왔다.
"학원도시에 도착하면 알려주지."
"네가 이 자리에서 질질 짜며 불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거냐?"
"글쎄, 다른 사람도 아닌 카미조 토우마 앞에서 폭력으로 협박이나 하는 걸 보니 풋내 나는 허세라는 생각쯤은 한다만."
액셀러레이터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제 앞에 서 있는 소녀가 이 전쟁 중에 수없이 목도한 '초능력이 아닌'쪽이라는 것 만큼은 확신했고, 그렇게 되면 그가 능력 외에 쓸 수 있는 수단은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에, 레이비니아는 그리 틀린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그보다는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에게든 위해를 가하는 즉시 모든 위험성을 무시하고 바다 위를 걸어서라도 그 앞에 설 사람을 액셀러레이터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저 녀석이 물에 처박히기까지 얼마나 걸리지?"
"너도 꽤나 곱지 못한 표현을 쓰는군."
"모르냐?"
"정확하진 않아. 앞으로도 저 기현상을 보러 여러 사람이 찾아올 테지만, 적당한 사람이 오지 못한다면 며칠은 기다려야 하겠지."
"너무 늦어."
"동감이야."
그녀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액셀러레이터는 시스터즈와 미사카 미코토를 보고 말을 하기 전 한번 헛기침을 했다.
"...너는?"
"미사카는,"
시스터즈는 액셀러레이터가 먼저 말을 건 것에 대해 잠시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였으나, 미코토의 모포 자락을 한 번 만지작거리고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 언니의 무사한 귀가를 부탁하려 합니다. 그리고 미사카 또한 담당 연구소로 귀환하지 않으면. 하고 미사카는 여기서 떠나는 것에 아쉬움을 표합니다."
"오리지널은, 기절한건가?"
"약간의 방전 상태입니다. 하고 미사카는 말장난을 해 봅니다. 체력의 방전, 퍼스널리티상 대전체로서의 방전. 어느쪽일까요."
"심각한 건 아닌가보군. 따라와라."
시스터즈는 고개를 끄덕이고 모포로 감싼 미코토를 안아 올렸다.
"라스트오더."
"...그래서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아쉬운 표정으로 당신을 보기도 하고."
"여기서 농땡이 칠 시간 없어. 나머지는 학원도시로 돌아가서 해."
"돌아가서... 당신, 이 사람과 다시 만날 생각인걸까,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본다."
"이 전쟁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그렇다고 지금 그걸 물을 상황은 아니니까."
그 말을 들은 라스트오더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발을 두어 번 동동 구르고는 카미조를 향해 본래의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 사람이 누군가와 다시 만날 기약을 하는 건 드물거든!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저 사람의 인간관계에서 희망을 본 감격을 표현해보기도 하고! 그게 당신이라는 점에서 미사카는 왠지 간지러운 느낌을 받기도 하네,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본다!"
"어이 꼬맹이, 헛소리 하지 마. 간다."
"분명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야.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저 사람을 대변하려 애써본다. 그럼 만나서 즐거웠어.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당신에게 또 보자는 인사를 하며 설레본다."
"응, 집에 가면 아프지 말고."
"물론이야!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당신의 안위가 더 걱정된다는 표정을 한다. 빨리 내려와야 해.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당신에게 당부하기도 하고."
언제까지고 인사만 하고 있는 라스트오더를 데리러 액셀러레이터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멀리서 얼굴에 한껏 드러낸, 하지만 잘 표현되지 못한 서운한 표정의 시스터즈와 인사를 끝낸 카미조는 액셀러레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도."
"...남 걱정할 처지는 아닐텐데."
액셀러레이터에게 그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카미조는 손을 흔드는 라스트오더에게 마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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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별빛 아래 영하의 바람에 휘날리는 두툼한 여우 목도리를 고쳐매며 렛서는 카미조를 향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야 위치상으로는 유리했지요. 마지막으로 베들레헴의 별이 어떻게 박살났는지 눈으로 본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랍니다. 앞으로 흩어진 성유물들의 수색에 동원되느라 바쁠 거구요. 방금 전만 해도 영국에 있는 결사 본부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질문 1. 지금이라도 서로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편이 상호간에 도움이 되지 않는가?"
"어휴, 조금이라도 수도원 밖으로 나가면 숨도 못 쉴 것처럼 구는 건 교인들의 특징인건지. 조금만 잠자코 있어주세요. 어차피 러시아 성교의 유물도 이 근처에 떨어졌을텐데, 부대와 합류하는 시간동안 조금 쉰다고 해서 아무도 나무라지 않아요."
"질문 2. 그 쉴 곳이 꼭 여기여야 하는가?"
"샤샤 씨! 연애는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거랍니다! 일만 한다고 연애사업에 충실하지 않으면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아요!"
"렛서, 너 지금 말이 모순되는 건 알고 있는거냐..."
"무슨 소리를! 저는 제대로 쉬고 있답니다. 몸을 과하게 움직이거나, 혹한 환경에 밀어넣거나, 술식에 몰두하거나, 베이로프에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잔소리를 듣고 있는 상태도 아닌걸요. 당신 옆에서 쉬려고 밤을 달려 여기까지 온 제게 어서 반해주세요! 그리고 저를 따라 이주하는겁니다! 그리고 종전의 영광을 대영제국에게! 어떠신가요!"
"어느 의미 상당한 워커홀릭이라는 감상 뿐인데."
"너무해라! 샤샤 씨, 이렇게 차갑게 구는 남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예를 들면 샤샤 씨의 전문분야인 본디지라던가."
"대답 1. 타인의 취미를 섣불리 정하는 발언은 삼가라. 대답 2. 이 불경한 복장은 내 취미가 아니다. 대답 3. 남의 연애사정에 하릴없이 동원될 정도로 나는 한가하지 않다."
"너희들 상당히 친해졌구나."
"아이잉, 질투하시나요?"
"아니."
렛서와 샤샤 크로이체프는 카미조가 탈출용 컨테이너를 타지 않았다는 것을 요새가 분해되기 시작하고 알아챘다고 했다. 그대로 요새를 따라 하늘만 보고 이동하던 중 해안까지 다다랐고, 수상에서 이동 할 수단이 없어 각자의 본부에 연락을 하던 그들 앞에 로마 정교의 수녀 부대가 나타나 레이비니아의 배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녀들의 목적은 구조활동이었으나, 렛서의 설명을 듣고 현장을 확인 할 필요성을 느껴 카미조 앞까지 다녀갔다. 그 후 아녜제는 레이비니아와 영어로 몇 마디 대화를 했을 뿐, 별다른 행동 없이 그녀의 부대원들을 이끌고 다시 러시아 땅으로 돌아갔다. 베들레헴의 별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유실피해를 본 것도 로마 정교인지라, 그 업무의 일부를 맡게 된 그녀들은 쉴 틈이 없는 것 같았다.
"레이비니아는, 내 오른손을 노리고 여기에 있는거야?"
위치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러시아 성교의 고위급 사제가 방문하여 카미조의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샤샤와 렛서를 데려갔다. 로마 정교 또한 카미조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에 그쳤다. 주시는 하고 있겠지만, 현 상황을 해결하기는 교파 내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했다.
완전히 어두워진 바다 위에서 카미조가 입을 열었다. 레이비니아는 그 말을 듣고는 새파란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유명 도시의 고층 건물에 있는 갤러리나, 고풍스러운 성 안에 놓여야 할 장식품 같은 소녀는 바람이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고, 그 소리와 별 달르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닌가? ...라고 하기엔 확실히 탐나는 재능이긴 하다만, 나는 마다하는 사람을 내 조직에 끌어들이지 않아."
"...하지만,"
"영국에 있는 편한 내 집과 조직을 두고 북극에 비싼 배까지 끌고 와서 하루를 지나 새벽까지 밖에 나와 네 앞에서 덜덜 떨고 있는 이유? 더 오해하게 놔둬도 재밌을 것 같네."
(공란)
"그런 옷 한 겹으로 춥지도 않은 모양이네."
"어?"
그 말을 들을 때 까지 추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카미조는 레이비니아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춥거나, 당연한 일이지만 덥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카미조의 표정으로 짐작했는지 레이비니아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에서 느껴지는 다른 감각이 있다면 말해. 네 상태를 판단하는 데에 참고하지."
"다른 건 없다고 생각해. 몸 여기저기가 아픈 것 정도... 이것도 텔레즈마 때문이야?"
"굳이 말하자면 그렇겠지. 네 성치 않은 몸에서 느껴지는 아픔이야 네 자업자득이니 어쩔 수 있는 게 아니고."
"예이예이."
"나도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레이비니아는 잠시 뜸을 들이다 중얼거렸다.
"너에게 뭔가가 작용한다기보다, 바깥에서 너를 감싸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거야. 그것마저 네 스스로 파괴하는 중이지만. 흥미롭네. 시간 세고 있을 테니 추위가 느껴지면 말해줘."
"시간까지 세는 의미가 대체 뭐야..."
"네가 이런 재해적인 마술에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지 알 수 있잖아. 생각을 바꿔서, 이런 재해적인 마술이라면 너를 얼마나 묶어둘 수 있을지 계산해 볼 수 있을 테고."
"발상이 참신하시네요!"
"농담이야. 당연하다."
물론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공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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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마, 토우마!"
"인덱스!"
아직 해는 뜨지 않아 어두웠지만, 카미조는 인덱스의 울음섞인 목소리를 듣자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몇 미터 앞에서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작은 수녀는
(공란)
그 뒤에서 서로 통성명도 없이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약소 조직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군. 이제 그만 제 굴로 돌아가서 동면 준비라도 하는 게 어떤지."
"허어, 남의 귀한 여동생 손목도 모자라 이 추운 곳에서도 홀랑 자리를 뺏으려 하다니, 보통 날강도가 아닌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도가 없군."
"허세는 그만 두시지, 능구렁이가."
"말 조심하시지, 청교의 개. 칸자키 카오리는 어디있지? 네 대신 온 게 그녀였다면 나중에 머리라도 쓰다듬어줬을 텐테."
스테일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이름에 멈칫했지만, 곧 경계하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그녀의 힘은 그녀의 것이 아니며, 물론 네 것도 아냐. 각오 없이 성인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마라."
"없나보군. 청교 내부에 있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말이지, 상황 파악도 없이 로마 정교에 홀랑 빌려준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스테일은 침묵했다. 레이비니아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고 고개를 흔들었다.
"후방의 아쿠아는? 그게 아니라면 본느 드 담 실비아라도 좋아. 천사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인물 중에 전력이 되는 인물은 없는건가?"
"전후에 조직의 전력 사정을 캐물었을 때 어떤 대답이 돌아오는지 모르나?"
"둘 다 행방불명이라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냐. 기껏 확보한 성인인데 관리를 이렇게 해서야."
"...그 이상의 모욕은 이 쪽에서도 넘길 수 없어."
"적어도 협상에 응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어떨까. 청교의 중요전력이 뭘 사이에 두고 비극의 주인공처럼 불쌍해져야 하는지 관심이라도 가지는 게 어때."
레이비니아는 물 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카미조와, 보트 끝에서 금방이라도 바다 아래로 뛰어들 것 같은 인덱스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카미조는 자기가 움직였을 때 인덱스에게 어떤 영향이 갈 것인가에 대해 가장 불행한 경우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 발짝은 커녕 팔도 제대로 움직이기 망설여졌다.
인덱스는, 첫눈에 카미조 주위에 있는 것과 그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했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더 가까이 가고싶어 하는 마음은 어쩌지 못했다. 원격제어영장에 묶여 온갖 마법을 써 댄 탓에 돌아가지 않는 머리와 성하지 못한 몸상태의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것 말고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금서목록."
레이비니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인덱스를 불렀다. 인덱스가 돌아보자 레이비니아는 스테일에게 보온병을 건냈다. 스테일은 찡그린 얼굴로 그것을 받았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뚜껑을 열고 인덱스에게 넘겼다. 볼을 타고 또 한 줄기 마저 눈물이 흘렀지만, 가쁜 숨은 조금 잦아든 인덱스가 병을 받아들었다.
"우는 와중에 미안하군. 목록에, 라지엘의 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있어. 원본과 에녹서를 기반으로 한 해석 일부까지. "
"황금여명에 관련된 서적은 대략 몇 권쯤 되지?"
"19세기 마법서에서 빠진 것은 거의 없어."
인덱스는 쉰 목소리로, 그러나 또박또박 레이비니아의 질문에 대답했다. 스테일은 인덱스의 우는 얼굴에 어쩔 줄 몰라하는 티를 숨기려 애쓰면서 그녀의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현장의 파악이다. 카미조 토우마의 안위도 그 파악에 포함되지만, 그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건 곤란해."
"안위까지 포함되어 있는 게 다행이네."
"일일히 비꼬는 말에 대응해 줄 생각은 없어. 협상이라는 말을 꺼냈다면 본론도 마저 꺼내라. 그걸 듣기 전에 우리는 움직이지 않아."
"이미 움직였다는 걸 자각해줬으면 하는데, 나는 최악의 경우 영국의 분파끼리 멋대로 협상해서 청교와 전혀 관련없는 사람을 보내는 것까지 생각했어. 만약 온 게 네 놈 하나라면 그나마 차악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금서목록까지 대동했잖아."
레이비니아는 카미조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카미조는 조금 전, 그녀가 칠흑같은 북극의 어둠 속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학원도시에 가기 전에 알려 줄 이유이니 지금 굳이 네 녀석이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카미조는 그녀가 지금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레이비니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을 이었다.
"잘 되면 칸자키 카오리가 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날짜가 바뀐 오늘 안으로는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어쨌거나 금서목록을 되찾고, 쉬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는 기회까지 얻은 청교가 다시 그걸 내보낼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거든. 헌데 본인이 바로 앞에 있군. 그렇다면 생각해봐라, 청교의 개. 네 상사는 이미 테이블 위에 뭔가를 내놓았어. 이건 그런 이야기다."
"...그 여우같은 년이..."
"그런 얘기야. 금서목록. 학원도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리지."
"시전자는 당신?"
"나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인덱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녀는 카미조를 보았다. 큰 녹색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카미조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일어서서 차갑게 식은 볼을 손바닥으로 훔치고 고개를 든 그녀의의 실루엣은 언제나의 인덱스처럼 보였다.
"금서목록에 있는 지식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직접 보여주지. 가브리엘의 텔레즈마와 반대 속성의, 신의 힘을 직접 빌리는 일을 할 거야."
그 뒤에서 껴입고 있던 담요와 겉옷들을 내려놓고 흰 원피스 차림이 된 레이비니아가 걸어나왔다.
"그 방대한 지식을 모아놓고 기껏해야 마도서 해독 같은 퍼즐 맞추기나 하고 있는 꼴을 보고 얼마나 답답했는데. 시범 운영에 지나지 않지만 이게 어디냐 싶을 정도야."
"교도들을 싸잡아 모욕하는 발언까지 하는군. 이렇게 호전적인 조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래뵈도 꽤 들떠 있으니 말이야, 애초에 굳이 사람의 머리속에 책을 기록해서 할 짓은 아니지. 네놈 뿐만이 아니라 당사자도 알고 있는 일 아닌가? 금서목록, 이쪽으로. 술식의 최종 확인은 그쪽에서 해 줘야 하는 일이니까."
"알겠어."
인덱스는 그 말에 대답을 하고도 돌아보지 않은 채 카미조를 바라보았다. 스테일이 켜놓은 불꽃에 반사되어 그녀의 얼굴은 역광으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 순간, 카미조는 인덱스가 활짝 웃었다고 생각했다. 토우마, 있잖아.
"나 지금, 금서목록이라서 좀 다행이라고 생각해. 토우마를 구해줄 수 있잖아."
"인덱스..."
"기다려 줘, 금방 나올 수 있으니까."
인덱스는 뒤로 돌아 레이비니아에게 다가갔다. 이레귤러를 극한까지 갈고 닦은 끝에 태어난, 어느 의미 사람을 벗어난 두 사람이 결론을 내리는 데에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후로는 순식간이었다. 레이비니아가 한 발 앞으로 나오고, 인덱스가 노래를 시작하고, 빛이 연소하고, 곧이어 카미조 주위의 공기가 충격을 받은 듯 흔들렸다. 카미조는 제 오른손이 이능력을 감지하는 것을 느꼈지만, 확실해진 건 전부 사라진 후였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중력을 받았다는 소리였다. 발끝부터, 본능적으로 위로 뻗은 손 끝까지 차가운 물이 몸을 삼키는 것을 카미조는 가만히 받아들였다. 심장까지 얼어버릴 것 같은 추위에 온 몸이 떨렸지만 불행히도, 카미조가 제 추위에 쏟을 관심은 금새 사라졌다.
눈 앞에 어른거리는 것이 익숙한 흰 옷자락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물 속에서도 펄럭이는 하얀 옷자락은 발광하는 것 처럼 보였다. 물결치는 그것이 제 손 끝 가까이에 있었기에, 카미조는 안간힘을 써 부여잡았다. 잡고나서 인덱스의 팔이라는 걸 안 순간 그는 위로 끌어올려졌다. 그리고 인덱스가 저를 따라 북극해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바ㅂ..."
"토우마, 토우마,"
카미조가 채 말을 하기 전에 다른 소리가 그를 가로막았다.
(미완.)